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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인천 동일방직 노동운동의 뿌리를 찾아서

기사승인 2019.08.30  09: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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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진(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

민족 차별을 통한 일본 대기업의 이익 극대화

▲ 여공1인당 40대 가동 동양방적 인천공장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조선총독부는 조선 진출하는 일본 대기업 공장에 공장법을 적용하는 조치를 유예하고, 2교대 야간근무제도 허용했다. 또한 16세 미만 청소년도 고용을 허용하는 특혜를 부여했다. 이로 인해 노동 강도는 일본공장보다도 더 강화되어 노동시간이 길게는 15시간 30분 이상 중노동도 가능했다. 휴식시간이 30분씩 보장되었으나, 이마져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단지 식사시간 45분과 휴식시간 15분만 허용될 뿐이었다.

일본정부는 청소년 노동자들이 철야작업을 하는 것은 건강상 적합하지 않고 풍기 상 많은 문제가 발생하면서 이를 금지하는 공장법을 시행하고 있는데 반해 조선총독부는 공장법을 적용하지 않음으로써 일본 대기업의 조선 진출을 용이하게 했다.

1933년 2월 인천부내에 동양방적 인천공장이 생긴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크게 술렁거렸다. 동양방적 인천공장에서 남녀직공을 모집한다는 소문을 듣고 실업자 1,300명이 인천부내 직업안내소로 일시에 몰려와 구직 신청을 했다. 이로 인해 인천부청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난리가 났다.

이와 같이 웃지 못 할 사태가 발생한 것은 1920년대까지는 일자리를 주도한 산업인 정미업의 쇠퇴였다.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편집부 press@incheonnews.com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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