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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4] 인천 동일방직 노동운동의 뿌리를 찾아서

기사승인 2019.09.09  09: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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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진(인천골목문화지킴이 대표)

조선총독부의 공장법 유예 조치로 일본 본지 공장의 3교대 8시간 근무제가 조선 내 공장에서는 2교대 12시간 근무제가 가능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동시간이 15시간 30분 이상이었다. 휴식시간 30분씩 보장되었지만 제대로 지키지도 않았다. 단지 식사시간 45분과 15분의 휴식시간만 허용되었을 뿐이었다.

일본 본지 공장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근무여건이었다. 공장법 제정으로 15세 이하 청소년 노동자들은 철야노동을 금지되었다. 철야노동은 청소년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풍기상 많은 문제가 발생하면서 사회문제로 대두되어 이를 금지시켰다.

조선 내 공장에서는 이를 적용하지 않음으로 해서 14-17세 여성노동자에게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부가하는 것이 가능했다.

동양방적 인천공장에 처음 채용한 여성 노동자 수는 1,200명이었다. 동양방적 인천공장은 1934년 2월 1,300여명의 구직자가 몰려와 동양방적 인천공장 입사 지원 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큰 소동이 일어났던 적이 있어 조선인 여성 직공 노동자를 순차적으로 채용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 해 7월 공장 측은 여성 직공 노동자를 모집했다. 이미 지난 2월 구직 신청소동을 겪은 바 있어 입사 지원자가 엄청 몰려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공장 측의 예상과 달리 입사 지원자 미달사태가 일어났다. 겨울철에는 농한기로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너도나도 입사 지원하겠다고 난리를 친 것이었다. 봄부터는 일자리가 많이 생겨 굳이 입사지원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었다.

동양방적 인천공장측은 1934년 3월 26일 일본 오사카 공장에서 파견한 55명의 숙련노동자가 공장 가동 전에 입사한 조선인 직공 노동자에게 직공기술을 전수해 공장 시설이 완공되자마자 즉각 공장가동을 하고자 했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일본어를 해독할 수 있는 정도의 학력수준을 갖춘 미혼자로 한정해 모집했다. 그러나 실제 채용된 여성 직공 노동자들은 보통학교 졸업자가 대부분이었으나, 일본어 구사능력이 그리 좋지 않아 일본인 파견 숙련노동자가 면직기술을 직접 전수하는 과정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공장 측은 여자고등보통학교를 나온 통역사원을 긴급 채용해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했다.

[편집부의 다른기사 보기]

편집부 press@incheonnews.com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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