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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삶이 실력있는 삶이다"

기사승인 2017.03.27  0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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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김월용 레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사장

   
  ▲ 김월용 레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사장 ⓒ이연수 기자  

[인천=이연수 기자]“긴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으면서 이제는 배경도 학벌도 아닌 진실과 실력만이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진화합니다. 끊임없이 진화하는 삶이 나에 대한 진실이고 실력이기 때문입니다.”

김월용 레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사장이 강조한 말이다. 오는 31일 레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창단연주회를 앞두고 하루 24시간이 부족한 김 이사장 일정에 끼어들어, 오케스트라 마지막 연습이 있는 고양아람누리 연습실로 가는 차안에서였다.

지휘자까지 55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연습이 한창이었다. 피날레를 장식할 김성환 북한공훈작곡가의 편곡작 ‘아리랑’은 관현악으로 승화돼 거대하게 흐르는 강처럼 찬연하고 장엄하게 그곳에서 출렁대고 있었다.

김 이사장은 “소시적 풀피리 정도 불어본 게 전부이지만 막연하게나마 내면에서 생각하고 있던 문화융성을 위한 첫발을 이제야 내디뎠다는 생각입니다. 음악공급자가 되어 음악소비를 끌어내는데 사업가로서 또 교수로서의 경험을 녹여 제대로 된 역할을 해낼 겁니다. 새로운 시대는 부와 명예가 아닌, 문화와 정서 영역에서 행복의 척도가 매겨져야 해요. 여기 있는 단원 모두 보시다시피 젊기도 하지만 참으로 실력 있는 음악가입니다. 음악을 소비하는 문화가 일상화되면 자연히 이들이 설 자리도 많아집니다. 제가 그것을 해낼 겁니다.” ......열정 그리고 자부심이 느껴졌다.

창단 연주회 1200석은 이미 매진됐다고 했다.

연습실에서 나와서 커피전문점으로 이동하는데 봄빛을 담뿍 물고 달려든 바람이 레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을 알리는 플랭카드를 흔들고 있었다. 그곳에서 김 이사장의 사진을 몇 컷 찍었다. 웃는 표정이 밝았다.

▲레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사장직은 그동안 이력에 비추어 볼 때 다른 영역이란 생각이 든다. 음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듣고 싶다.

나는 악기를 익힐 기회가 없었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발표하는 영역은 실상 내게는 넘기 힘든 높은 벽이다. 따라서 나는 주림으로 문밖에 선 자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음악은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을 망라한 모든 생명체를 치유하고 자라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클래식은 오랜 시간 검증된 음악이다. 관현악 협연은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뜨거운 감동을 준다.

이사장직 수락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망설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나는 선제적으로 직관력이 강한 사람이다. 태어남과 죽음은 신의 영역이지만 직관과 예측 그리고 대비는 인간의 영역이라는 생각이다. 그것을 최대한 활용했다. 실제로 직관을 믿었을 때만이 최선이 나왔다. 그래서 결정했다.

느낌이 좋다. 이사장으로서 군림이 아니라 단원들의 철학을 공유하고 뒷바라지 할 생각이다. 그것이 이사장의 덕목이다. 그러나 승패는 결국 실력으로 판가름 난다. 무엇보다 실력을 키우는 일이 중요하다. 예술가는 칭찬과 격려를 먹고 자란다. 단원들의 실력은 그 바탕 위에서 자랄 것이다.

   
  ▲ 김 이사장이 단원들과 공연 관련 상의를 하고 있다.ⓒ이연수기자  

▲사업가, 인천시 교육문화특보, 인천대 이사 등 다양한 이력이 있다. 다양했던 이력만큼이나 수많은 ‘벽’을 넘나들었겠다. 가장 힘들었던 ‘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요즘 TV프로그램 중에 복면가왕이 있더라. 복면가왕을 가만 보니까 이게 실력만 보자는 거다. 그만큼 실력이 대세란 반증이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어느 시점에 가니 ‘증’이라는 게 필요했다. (잠시 머뭇) 이런 말 하면 남들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받은 정규교육은 초등학교 교육이 전부다.

25년간 사업을 해오면서 영어, 한자 등을 틈틈이 익혔고 사업과 관계된 법률공부를 법전을 다 외울 정도로 많이 했기 때문에 사업가로 살면서는 특별한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시점, 즉 인천시 교육문화특보를 하려고 보니, 또 교수를 하려다 보니, 사회는 막연하게 자부심을 갖고 있던 나의 ‘실력’보다는 공적으로 나를 입증할 수 있는 증명서를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벽’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벽’이 나를 사업가의 꿈 너머에서 잠재했던 또다른 나의 꿈을 일깨워 주었다. 주저함 없이 향학의 불을 당겼다. 그 때가 내 나이 53세였다.

중학교 과정을  2월에 합격하고 8월에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대학입학 자격을 취득했다. 이듬해에는 젊은 친구들도 도전하기 힘들다는 독학사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해에 바로 경영학사와 국문학사 대학졸업 자격을 인정받았다. 동시에 국가기술자격증 3개를 연이어 취득했다. 그 이듬해에는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 전체 수석으로 합격해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다. 그렇게 해서 55세에 정책학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중학교 과정부터 따진다면 만 4년 만에 석사학위까지 해낸 셈이다.

공부하면서도 나는 진명스포아트를 경영하는 사업가였고 뉴욕주립대 원장을 맡은 교육가였다. 또한 인천시 교육문화특보로도 있었다. 김춘호 한국뉴욕주립대 총장과 송영길 전 인천시장이 재능과 실력 그 자체로써 나를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고 있다. 나는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전공과는 별도로 IT융합 접목 학문으로 공학박사 취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내가 통계와 확률에 의지해 선택하는 삶을 살았다면 이 모든 일은 불가능했다. 나는 매순간 나의 직관을 믿었고 언제나처럼 잘 될 것이라는 것을 또한 믿었다. 돌이켜 보면 ‘벽’ 또한 나를 키운 동력이었다.

▲며칠 전 한림병원 강의를 3번 연달아 하는 등 인천 곳곳에서 강의를 많이 하고 있다. 강의내용 평가에서도 늘 만족도가 높은데 비결을 알고 싶다.

하나의 강의를 하기 위해 최소 3개월은 준비해야 한다. 나는 행복과 악기와 공부는 세월이 약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강의도 마찬가지다. 꾸준히 반복학습으로 익히고 경험으로 숙달되어야 제대로 된 강의가 나온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치열한 세상을 몸으로 살았다. 몸으로 배워야 기억에 남고 재산이 된다. 혜민스님은 멈추면 보인다고 했지만 나는 멈추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살았다. 내가 멈추면 생각도 멈추고 몸도 처지고 시간도 화석화 된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진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어제 한림병원 1200명 직원 대상 3차 강의가 끝났다. 의사와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인사와 예절은 의무가 아니라 권력으로 쓸 수 있어야 진정한 의사고 간호사다란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인공지능은 이야기해도 인공감성 이야기를 못하듯이 인간의 감성은 승패를 가르는 효율적 무기가 될 수 있다.

병원 뿐 아니라 시·군·구 특강을 통해 사업 경험을 살린 미래 리더쉽 강의와 교육문화특보로 있으면서 많이 했던 아이들 진로진학 설명회 등을 하고 있다. 현재는 경인여대 두 개 반을 맡아 교양필수과목인 ‘대인관계능력’을 강의하고 있다. 얘기 하다 보니까 내 자랑만 늘어 놓은 것 같다.(웃음)

   
  ▲ 김월용 레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사장이 공연을 앞둔 단원들의 연습을 참관하고 있다.ⓒ이연수기자  

▲말처럼 사업가에서 교수로 오케스트라 이사장으로 끊임없이 진화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 과정에서 가족의 지원이 컸겠다.

그렇다. 작년에는 형제자매들에게서 ‘가문의 영광상’을 받았다. 불굴의 의지로 자수성가해서 형제자매들 간 화목을 도모해 그 공로를 기린다는 내용이었다. 나 뿐 아니라 우리 남매들 그 시절 많이 배우지 못해 어려운 시절을 살았다. 나는 이 상이 자랑스러워 늘 자랑을 한다. 또 2015년이었나, 그 날은 내 생일이었다. 그 때, 우리 아이들에게서 ‘나의 슈퍼맨 상’을 받았다. 열심히 살면서 사랑하고 희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참 값지고 고마운 상이다.(환한 웃음) 그래도 제일 고마운 것은 역시 내 아내다. 말없이 나를 믿고 바라봐 주었다. 간섭하고 통제했으면 이만큼 못했을 거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 나는 강원도 영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내가 금수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은데 그 당시 찍어 놓은 사진이 없다.(웃음) 찍은 것도 없었지만, 있어도 장마철마다 집이 떠내려가서 남아 있는 게 없었다. 4남3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는데 내가 7살 때부터 부모님은 거의 병원에 있을 정도로 아팠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어려서부터 별거 다했다. 페인트가게에도 있어 봤고.(침묵)

18살 때 나이를 한 살 속이고 강원탄광에 들어가 광부가 됐다. 그 때부터 8년 간 시커먼 갱 속에서 일했다. (손사래 치며 ‘이런 얘기는 하지 말까’ 하다가 이내 머쓱한 웃음) 그 당시는 못 배우고 가난한 사람이 일하는 것 치고는 광부 월급이 제일 많았다. 그곳에서 갱목을 져 나르는 일을 했다. 해발 700m에서부터 파내려간 시커먼 갱 지하 1000m 씩 들어갔다 나오면 하늘마저도 까맸다. 천지가 석탄가루였다. 그래도 열심히 일했다. 아픈 부모님 약값이며 생활비를 부치기 위해서는 그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26살 되던 해에 두 분이 다 돌아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58세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렇게 나를 탄광에서 꺼내줬구나 싶다.(침묵) 요즘 젊은 친구들 금수저, 흙수저 하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나는 흙수저도 아니다. 시꺼먼 석탄수저로 밥을 먹었으니 나는 석탄수저가 맞다.(웃음)그런데 그 가난이 사업가의 꿈을 꾸게 했다. 그래서 사업가가 되었고.

▲어려운 시절을 겪으면서도 꿈을 꾸었고 꿈 너머 다시 꿈을 꾸고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전할 메시지가 있다면.

박근혜정부의 실패는 진화하지 못한, 화석화된 사고때문이었다는 생각이다. 나는 ‘진화형 인간’을 지향한다. 진화는 곧 실력이다. 실력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생기고 다시 그 꿈 너머를 새롭게 디자인해 가면서 생긴다. 옛날에는 물건이고 사람이고 고쳐 썼지만 이제는 버린다. 진화하지 않으면 이 시대에서 폐기처분된다는 의미다.

특히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 젊은 친구들이 쉽게 좌절하는 이유는 목표를 너무 높게 잡기 때문이다. 과다한 목표는 독이다. 행복의 목표를 과하게 잡으면 불행하게 되듯이 인생의 목표 또한 처음부터 높게 잡으면 실망하게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목표부터 잡고 그 목표를 이뤄나가면서 행복해 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 너머를 내다보고 새로운 목표를 디자인해 가는 과정 자체가 곧 실력이다.

또 하나의 당부는 인생은 수학공식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내 좌우명이기도 하다. 착한 일을 플러스해 나갈 때와 나쁜 일, 나쁜 감정을 플러스해 나갈 때의 결과는 인과응보처럼 정확하다. 오늘이 바로 미래의 답이다.

   
     

▲▲한 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가 가족을 껴안고 쉼 없이 꿈꾸고 달려왔었을 비탈지고 때로는 질척거렸을 길들을 생각해 보았다. 많이 외롭고 고단했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의 쉼 없는 꿈 너머 꿈들이 다져지는 동안 그는 그도 모르는 새 거인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가 내딛는 보폭 또한 커졌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김월용 레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이사장으로서 그다운 활약 기대한다. 그리고 그의 진화의 끝, 아니 지금은 다음 단계의 진화가 무엇일까 궁금하다. 지혜의 상징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 날아올라 세상을 바라본다며 5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세상이 넓게 보였다는 그의 말처럼 그의 진화가 보다 크고 넓어지기를 기대한다.

[이연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이연수 기자 ysmh01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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