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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 독립유공자 558명 포상 신청

기사승인 2020.08.11  15: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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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가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558명 포상 신청을 했다.

인천대에 의하면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국가보훈처에 포상신청을 해오던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광복 75주년 포상신청에 앞서 4차 설명회를 열었다.

11일 인천대 미추홀캠퍼스 별관에서 열린 이날 설명회에서는 포상신청자 558명을 포함, 지금까지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포상을 신청한 분이 2060명이나 된다고 밝혔다.

조봉래 인천학연구원장은 인사말에서, “이번에 독립유공 대상자 558명을 발굴하여 포상신청을 위해 노력한 이태룡·이윤옥 박사의 노고를 치하하고, 먼 길 마다 않고 참석해주신 유족 여러분께 고마움을 표하며, 앞으로도 인천시 독립유공자는 물론, 전국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 일에 한층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며 "인천·경기 의병의 삶을 조명하는 일도 함께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번 포상신청 대상자는 의병, 3·1만세시위와 임시정부 활동, 국내외 반일활동, 반제국주의 활동, 농민활동을 전개했던 분들인데, 그 중에는 1907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전개되었던 서울진공작전 때 13도창의진 경기・황해도 의병대장으로 활약했던 권중설(일명 권중희) 의병장,

호남의병장 심남일 의병장 부인 임사오 여사, 광무황제 특사로서 활동하다 순국한 심상훈·이용익 의사,

임시정부 국무원 김용철 지사, 임시의정원 부의장 이규홍 지사, 청년동맹 양산지부장과 신간회 경동지회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 동대문경찰서에 붙잡혀 혹독한 고문으로 반신불수의 삶을 살았던 김기오 지사,

신간회 안동지회와 청년동맹 활동으로 옥고를 겪은 김상호 지사와 일제강점기 진주지역 노동·농민단체 설립을 하다 수차례 옥고를 겪은 강병도 지사,

또 개성의 송도고보 출신 10명(졸업생 3명과 재학생 7명)이 포상대상자로 신청된 것이 특이하다.

그들은 1934년 전후 개성 송도고보 학생들로 일제가 간도를 삼키게 되어 조국 광복(독립)의 터전을 잃게 돼 반제국주의 투쟁을 벌여야 했다. 또 노동·농민단체를 만들어 일제에 대항해야 함을 주장하다 피체되어 고초를 겪었다.

특히 윤재환 의사는 송도고보 졸업 후 도쿄 법정대학에 수학하면서 학생운동에 참여하던 중, 1938년 ‘재 동경 유학생 독립운동 사건’에 연루되어 일경에 심한 고문을 받고 도쿄 적십자사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하였으나 결국 숨졌던 순국선열이다.

이번 포상신청 대상자 558명 중, 징역 15년이 선고되어 이른바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에 남아 있는 가덕의·강종철 지사 등 210명의 판결문 등 행적 자료를 찾아 거증자료로 제출할 예정인데, 그 서류가 2만여 매이다.

이날 참석한 유족인 개성 송도고보 출신 윤재환 의사의 조카 윤용택(80.성균관대학교 총동창회장) 씨는, “백부께서는 송도고보 5학년 때 동료 10여 명과 함께 반제국주의 투쟁을 하다 붙잡혀 개성경찰서와 동대문경찰서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50여 일 만에 풀려났지만 2년 뒤에 일본으로 가서 조선인유학생회를 조직하고 이듬해부터 도쿄 법정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가면서 조선 독립을 위해 활동했다"며

"결국 일본경찰한테 피체돼 심한 고문을 당하고 초주검 상태에서 적십자사병원으로 이송되었다가 마침내 1938년 10월 16일 순국하여 유골로 돌아오셨다. 부모형제, 조카 모두 평생 한을 가지고 살았는데, 이번에 포상신청을 하게 되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이토록 오랫동안 정부나 학계, 사회가 무관심했던 것에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안동의진의 소모장으로 활약하다 순국한 김준모 의병장 증손자로서 신간회 안동지회와 청년동맹 활동으로 옥고를 겪었고, 6.25 때 안동경찰서로 출두했다가 행방불명된 김상호(일명 김공망) 지사의 아들 김영조(74. 순국선열유족회 사무총장) 씨는 “고조부께서 안동의진 소모장으로 활약하다가 전사 순국하신 후, 부친께서 고조부의 맥을 이어 반일운동에 나섰다가 옥살이를 했고, 6.25사변 직후 안동경찰서의 호출 이후 귀가하지 않은 부친의 행적을 알 길이 없어 포상신청은커녕 사망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왔다"며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인데, 인천대학교에서 부친의 공적을 찾아 포상신청을 한다는 소식에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규홍 지사의 손자 이경우(70) 씨는 “조부께서는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때 수십 만 원의 자금을 가지고 가서 임시정부가 운영될 수 있게 밑바탕을 닦았고, 임시정부 재무·외무총장, 임시의정원 부의장을 역임했다. 폐결핵으로 귀향해서 아픈 몸을 조리하면서도 아들로 하여금 민족기업 ‘환영자동차(丸榮自動車)’와 ‘가촌토지(佳村土地)’라는 조림사업을 하다가 별세했다"며 "지금까지 포상하지 않은 이유가 일제강점기 사업을 했다고 하지만, 저의 조부나 저의 선친께서 일제에 협력한 것은 전혀 없고, 오히려 ‘불령선인’이란 낙인이 찍혀 늘 일본 헌병과 형사들의 감시 속에 사셨던 근거가 일제의 기밀문서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시정부 국무원과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김용철 지사의 손자 김선진(68.한양대 명예교수) 씨는 “조부께서 임시정부에서 국무원과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시다가 인력거꾼의 고발로 피체되어 강제로 귀국당한 뒤 부산형무소에 수감생활 중, 폐결핵으로 병보석되었으나 병환이 깊어 돌아가셨고, 당시 폐결핵은 무서운 감염병으로 강제로 화장되어 선산에 뼛가루를 뿌린 것을 두고 선친께서 언젠가는 조부님의 공적을 기려야 한다고 했으나 지금껏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조부님의 공적을 발굴하여 포상신청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으로 기뻤다.”라며, 고마움을 표명했다.

이용익 의사의 외증손자(손녀의 아들) 허종(66) 씨는 “외증조부는 일제침략에 맞섰다가 일본으로 끌려가서 10개월 동안 고초를 겪었고, 수차례 광무황제의 특사로 비밀리 청국, 프랑스, 러시아를 갔었는데, 일제는 밀정과 자객으로 하여금 두 차례 살해를 시도했다. 처음에는 칼에 11곳을 찔려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했으나 1907년 2월 24일 헤이그특사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륙횡단 열차를 타러 가는 날 아침 독약이 든 식사를 하시던 중, 순국했다"며  "광무황제는 ‘그가 서거하였다는 부고를 듣고 보니 참으로 슬픔을 금할 수 없다.’ 하며, 후히 장례를 치르게 하고, ‘충숙(忠肅)’이라는 시호를 내리셨던 것이 『고종실록』과 『승정원일기』에 나온다. 외증조부의 공적은 민영환, 조병세 등과 같이 포상돼야 마땅하고, 이번 기회에 포상이 이루어져 외증조부에 대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조작이 낱낱이 밝혀졌으면 한다. 특히 국내외 기록을 정리해 준 이태룡 소장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청년동맹 양산지부장과 신간회 양산지부와 경동지부(서울)에서 반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심한 고문으로 반신불수의 삶을 살아오면서도 문맹퇴치와 민족정신 함양을 위해 애쓰시다가 별세한 김기오 지사의 증손자 김영진(47.미래엔 대표) 씨는 “증조부님께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반신불수 몸이 되었지만 조국 광복을 위해 먼저 문맹퇴치를 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한평생을 바쳤다. 선친께서 증조부님의 공적을 찾으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이 다 아는 일인데, 굳이 후손이 포상을 신청하는 일은 무안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포상신청을 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조부님의 공적을 찾아 포상신청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편 고맙기도 했지만, 후손으로서 민망하기도 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순국선열유족회(회장 이동일)・지광회(회장 김기봉) 임원들과 독립기념관 서보현·전영복 이사는 이구동성으로 무더위 속에서도 불철주야 노력한 이태룡·이윤옥 박사의 노고를 치하했다.

국회의원 시절 친일재산환수법 제정을 주도한 바 있던 국립인천대학교 학교법인 최용규 이사장은,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는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행적을 발굴하여 포상을 신청한 것이 벌써 2년째 접어들었다"며 "앞으로도 많은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포상신청을 할 예정이며, 이로써 저희 대학이 민족대학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독립유공자 발굴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이태룡 소장은 “이번 독립유공자 발굴에 이윤옥 박사의 노력이 매우 커서 올해 4월 737명, 이번에 558명 등 4차에 걸쳐 2060명을 발굴, 포상신청을 할 수 있었다"며 "국가보훈처로부터 지난해 광복절에 포상신청한 550명 중, 114명을 검증해서 100명을 포상대상자로 심의에 부의했다는 공문을 받았지만 포상심사가 너무 더디다. 하루빨리 심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윤옥 박사는“이른바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 속에 나오는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는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연수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이연수 기자 press@incheonnews.com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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