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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대, 독립유공자 550명 발굴,국가보훈처에 포상 신청

기사승인 2019.08.13  15:2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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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74주년 광복절 맞아 13일 포상 신청 설명회 진행

13일 인천대 중국학술원 회의실에서 포상신청 대상자에 대한 설명회가 열렸다.

지난 6월 1일 ‘제9회 의병의 날’을 맞아 인천대학교에서 의병투쟁 유공자 187명과 의열투쟁 유공자 28명 등 215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국가보훈처에 포상신청에 이어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550명을 발굴, 국가보훈처에 포상을 신청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인천대에서 독립유공자 발굴단을 이끄는 이태룡 박사는 20여 편의 논문과 『한국 의병사』(상·하) 등 38권의 단행본을 출간했고, 그동안 1,700여 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포상신청을 한 바 있는 저명한 의병연구가이다.

인천대 조동성 총장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왕고모(아버지의 고모)인 관계로 독립유공자 발굴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차에 최용규 전 국회의원이 인천대학교 법인 이사장으로 취임하자 독립유공자를 발굴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펼치고자 이 박사를 연구위원으로 초빙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번 포상신청 대상자는 3․1혁명 유공자 382명과 간도와 함경도 지역을 중심으로 반일투쟁을 전개했던 유공자 168명 등이다. 전체 550명 중 2명을 제외하고 모두 판결문을 거증자료로 제출했는데, 그 서류가 무려 2만 500여 장이나 되어 더욱 놀랍다.

포상신청 대상자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인물은 1920년 3월 1일 3․1혁명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학교의 뒤편 언덕 위에서 만세를 부르고, 교정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피체되어 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 전신)에서 곤욕을 치렀던 배화여학교(배화여고 전신) 24명 중, 아직까지 포상을 받지 못한 6명은 판결문과 함께 서대문감옥에서 촬영된 사진자료를 발굴하여 제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 지역 출신이 전체의 2/3가 넘고, 특히 일제에 맞서 반일투쟁을 벌였던 분들은 간도와 함경도를 드나들었던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대부분 함경도 출신인 것이 특이하다. 그 중에서 간도 왕청현에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모연대장(募捐隊長)으로 활약하던 최수길(崔壽吉)이 일본군에 피체되어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는데, 그 아들 최령(崔嶺)은 조봉암 선생 등이 발기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하여 독립군 자금을 모으다가 피체되어 오랜 구류생활 끝에 징역 8년이 선고되는 등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을 발굴하여 포상 신청한 것은 만시지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본 군경과 격전을 치르고 전사한 분들도 많았지만, 부상을 입고 피체되었거나 밀고에 의해 피체된 분들은 모진 고문 끝에 사형, 무기징역, 징역 20년 등 악형이 선고되었는데, 하나의 판결문 속에 18명이 사형, 4명이 무기징역에 처해진 경우도 있었고, 3․1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무더기로 피체되어 1.1평(3.63㎡) 감옥에 16~17명을 구금하고 심한 매질을 가하여 많은 사람들이 숨지게 한 일본 경찰의 만행이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지역 애국지사들의 상고이유에 많이 드러나 있다.

 13일 국가보훈처 접수에 앞서 인천대 중국학술원 회의실에서 포상신청 대상자에 대한 설명회가 열렸는데, 판결문이 없는 두 분 독립군의 후손이 참석했다.

 한 분은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선생이 이끈 군정서(軍政署:통칭 서로군정서)의 통의부(統義府)와 정의부(正義府)에서 반일무장투쟁을 벌인 임인호(林仁昊) 선생의 따님 임희숙(林姬淑) 여사인데, 여든 살의 노인이 되어 설명회에 참석하여, “어머니께서 40여 년 동안 선친이 남긴 쪽지를 들고 발이 부르트도록 노력하여 국가보훈처에 포상을 신청했지만 계속된 반려로 인해 가슴에 한을 품은 채 돌아가셨는데….”하며, 말을 잇지 못했고. 또 한 분은 독립군 출신 조상학(趙相學) 선생의 따님 조용자(趙容子) 여사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간도지방에 파견되었다가 탈출하여 광복군 대열에 서서 조국 광복을 위해 일조했던 부친의 생전에 포상을 받아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고자 무척 애썼지만 지난 7월 27일 향연 97세를 일기로 별세하고 말았다.”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 참석한 순국선열유족회(회장 이동일) 임원과 지광회(회장 김기봉) 임원들과 독립기념관 전영복·서보현 이사는 이구동성으로 무더위 속에서도 불철주야 노력한 이태룡 박사의 노고를 치하했다.

 국회의원 시절 친일재산환수법 제정을 주도한 바 있고, 우크라이나에서 국적을 갖지 못한 ‘고려인’의 국적회복을 위해 수년 동안 애쓴 끝에 우크라이나에 ‘고려인 촌’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던 국립인천대학교 학교법인 최용규 이사장은, “저희 인천대학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내의 각종 기록이나 판결문은 물론, 장차 연변대학과 연계하여 독립유공자의 행적을 발굴하여 포상을 신청할 예정이다.”라고 했고, 조동성 총장은 “독립유공자 발굴은 한참 늦었지만, 인천대학에서 앞장서서 매년 수백, 수천 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민족대학으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했다.

 독립유공자 발굴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이태룡 초빙연구위원은 “평안도, 황해도 재판기록은 고등법원(현 대법원)의 기록뿐이고, 함경도 지방은 1심(원심) 재판기록을 볼 수 없는 한계도 있지만, 남한의 재판기록조차 아직 70% 이상 공개하지 않아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찾기에 많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그것이 공개되어야 하고, 국가보훈처에서도 보다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수많은 포상 대상자를 신속하게 심의해 주기를 간절히 요망한다. 그리고 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 등에 사진자료만 남아 있는 분들 가운데 수백 명이 아직 포상이 안 됐지만 내년 3월까지는 자료를 발굴하여 모두 포상신청을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양순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양순열 기자 press@incheonnews.com

<저작권자 © 인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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